광수 1호 김군, 그리고 최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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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 1호 김군, 그리고 최진수
  • 이세상 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
  • 승인 2020.06.08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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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눈 광대 이세상
애꾸눈 광대 이세상

지만원은 행불된 김군을 광수 1호로 지목했다. 강상우 감독은 영화 ‘김군’을 제작하여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예술로 표현했다. 그리고 2년 후 뜻 있는 분들이 ‘김군 동상 건립 추진위’(이하 추진위)를 만들고, 동상을 제작하여 마침내 시민군 결성 장소인 광주공원에 설치했다.

하지만 이 김군 동상이 광주시의 허가를 받지 않아 무단 설치 논란이 일면서 추진위와 시 간 입장이 갈리고 있다.

위원회는 수개월 전부터 취지를 설명하고 동상 설치를 허가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시청 부서간의 소통 부재로 늦어져서 40주년 5월 기간에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인 반면, 시청에서는 허가가 나지 않았으니 철거를 해달라는 입장이다.

김군은 80년 5월24일 사살됐다. 11공수는 군인들 간 오인 사격에 대한 보복으로 송암동을 덮쳤고, 숨은 사림들을 나오라고 윽박질렀다. 이에 김군이 앞장섰다. 그러자 한 군인이 관자놀이에 방아쇠를 당겼다. 사방으로 김군의 피가 튕겼다. 바로 옆에서 최진수 씨 역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대위 계급의 중대장 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여기 민가에서 죽이면 여론이 안 좋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

그래서 끌려간 곳이 효천역 뒷산이었다. 영화 같은 얘기처럼 최진수 씨는 사살은 면했다.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폭행을 당한 후 끌려가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 후 최진수 씨는 5공청문회에 나가서 증언을 했으며, 어디엔가 암매장당한 김군을 찾기 위해 광고도 냈고, 매년 5월24일 송암동 학살 현장에 혼자 들려서 제사를 지냈다. 40년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그는 속죄의 길을 모색했다.

“그렇다. 동상을 제작하여 김군에게 진 빚을 갚자”

그래서 강상우 감독과 상의한 후, 거액을 쾌척하여 동상을 건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최진수 씨는 재수생의 신분으로 공수부대의 만행에 맞섰고, 5월23일에 도청에서 김군을 만났다. 그리고 송암동 양민학살 소식을 접하고 시민군들과 함께 송암동으로 갔다. 김군과의 인연은 단 하루 뿐. 그러나 40년 동안 가슴에 김군을 담고 살았다고 한다. 참으로 모진 세월, 아니 아름다운 숙명 아닌가?

광주는 모범적인 도시, 온 국민이 존경하는 민주화의 성지 아닌가? 그래서 광주시와 추진위가 김군 동상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리라 믿는다.

김군과 최진수 씨의 우정과 의리를 보면서 참으로 부끄럽다. 입버릇처럼 5.18의 전국화,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우리는 이름 없이 쓰러져간 김군과 수많은 억울한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무얼 했는가?

김군은 어딘가에 암매장되어있을 행불자들의 이름이며, 불의에 맞선 모든 시민군들의 상징이다. 그리고 최진수 씨는 국가와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대한민국의 양심이다. 김군의 죽음과 최진수 씨의 선행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5.18 40주년이 되었으니 우리 모두가 더욱 배려하고 소통해서 희망찬 광주를 디자인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우선 가까운 우리의 동지인 김군과 최진수 씨를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보듬어줬으면 한다. 우리는 죽음을 극복한 위대한 광주시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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